며칠전 비가 많이 오던 날 아침, 학교를 향해 가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집을 떠날 때는 그냥 평범한 비오는 날 아침이었는데 학교 근처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65 번이 막힌다고 하여 크리틴덴 드라이브로 들어갔는데 학교쪽으로 갈수록 수위가 높아져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수업시간은 다가오고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거니와 후회도 하였다. 아침에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비가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왜 늦게 나와서 길거리에서 고생하고 수업도 늦게 되었나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학교로는 갈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집으로 와서 티비를 켜 보니 학교 주변은 큰 연못들이 되었고 수업은 모두 취소되었다나. 티비에는 학교 모습이 생방송으로 나오는데, 건물에 갖혀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물속에 잠겨버린 주차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제서야 그 후회는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일찍 서둘러 학교에 갔었더라면 나는 저 사람들처럼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이 차 오는 건물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것이고 내 차는 잠수함이 되었으리라.
흔히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을 한다. 직역하면 변방 노인의 말이라는 뜻인데, 노인이 가지고 있던 말로 인하여 화가 복이되었다가 복이 화가 되었다가 했다는이야기를 담은 중국 고사 성어이다. 이 이야기에 호사다마니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같이 나온다. 믿음이 없는 분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팔자/운명/재수 등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한 우리들은 세상의 모든 일은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짐을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보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의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좋은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사는대도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의 뜻과 거의 상관 없이 사는대도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우리가 백퍼센트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 이해 안되는 부분을 커버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최선을 다해서 주를 섬기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때 바로 새옹지마를 생각하게 된다. 주님께서 이 어려움을 통하여 얼마나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좋은 것을 받는 과정이 늘 즐겁고 편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 하나님의 이 신실하신 약속을 믿는다면 믿는자에게는 어떠한 고난도 앞으로 올 좋은 것을 기다리는 그저 감당할만한 시험이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세상 일이 잘 풀려갈 때, 혹시 그것이 나에게 시련으로 가게 하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아야 한다. 길거리에서 남의 아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보아도 우리는 보통 야단을 치지 않는다.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자식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면 야단을 치기 마련이다. 하나님 앞에 잘못을 행하고도 야단을 맞지 않으면 과연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여기서도 다시 새옹지마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좋은 일이 영적으로 결코 좋은 일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새옹지마는 팔자도 운명도 아니요 결국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나에게 나쁘게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좋은 일일수도 있고, 나에게 좋게 보이는 일도 영적으로 죽어가는 멸망의 길일수도 있기에.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