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어느 분으로부터 책 선물을 하나 받았다. 성령 사역에 대한 책이었는데 신앙적으로 부침이 많았던 나에게 참 필요한 책이라 생각되어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런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 아니다. 첫 페이지를 펴기도 전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서이다.
책의 첫 표지에 선전용 표지가 덧붙여져 있다. 거기에 보면 “과학자인데 성령 사역을 하는 XXX 교수의 성령님 이야기” 라고 씌어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파란 글씨로 XXX 목사, 000 목사 추천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과학자가 성령 사역을 한다…. 저자분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성령 사역자로 귀하게 쓰임받는 것은 훌륭한 일이요, 나에게는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앞에 붙은 ‘과학자인데도’는 무엇인가? 나의 삐딱선으로 드는 생각은 그분의 직업이 과학자가 아니고 혹시 별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다면 그래도 그 책 앞에 그런 문구를 썼을까? 그리고 저 목사님들이 추천을 했다는 것은? 물론 그 목사님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알만한 유명한 목사님들이고 그렇게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으신 분들이 추천했다면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드는 생각은..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그걸 굳이 책 첫표지에 넣은 이유는?
요즘 교회가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어가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교회가 ‘거룩’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룩’이라는 말은 세상과 구별된다는 말이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으면 세상에서 풍기는 냄새, 육신에서 나오는 썩은 것들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니 세상적 방법이 어느정도 교회에 들어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되어 가는 것까지 자각하지도 못하는 것은 영의 눈이 어두어 성령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그에게 유익하던 것, 즉 그의 지식과 가문과 그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디 가서도 바울은 자신의 화려한 배경에 대해 자랑한 적이 없다. 바울 서신 어디에 “가말리엘 문하생 바울의 성령님 이야기” 라고 쓴적이 있었던가. 예루살렘에서 심문받을때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자기 방어를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런 배경을 주셨기 때문에 그가 큰 전도자의 사역을 감당하였고 신약성경의 절반을 서술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능력을 그에게 주신 것은 그 일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이지 그걸 자랑하라고 주신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너무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그가 그만큼의 교육을 받았기에 체계적으로 성령 사역도 하고 책도 쓰고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거기서 멈추지 못했을까. 저 책은 좋은 하나님을 말씀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설물을 앞에 척 하니 자랑처럼 붙여놓은 셈이니 말이다.
물론 저런 문구가 책 파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책이 많이 팔리면 읽히기도 많이 할 터이니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는 소기의 목적이 잘 달성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마전 어느 목사님으로 부터 요즘 신학교에서는 교회 성장론을 교회와 전혀 관계없는 마케팅 하는 분이 가르치는 곳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우리는 효율적이라는 미명아래 배설물을 다시 교회 안으로 들여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혹시 그 방법이 효과를 거둘지는 몰라도 그럼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기회를 놓지고 있지는 않은가?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면 무너진다고 했을 때, 요단강 물에 들어가 씻으면 병이 나으리라고 했을 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거나 나아만 장군이었다고 상상해보자. 도저히 효율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방법이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았고 세상에 큰 파급 효과를 내었다.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당장 성공하는 것 같이 보이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는 그러한 방법을 생각해 낸 우리의 지혜를 자랑하여 교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너무나도 잘 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하나님과 더깊은 교제를 나누게 한다. 하지만 세상적인 방법은 성공하여도 실패하여도 결국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 뿐이다.
교회안에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세상적인 배설물이 너무나 많이 들어와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게다가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교회에서조차 그것으로 인하여 권세를 누리기도 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 절반은 어부였으며 가장 똑똑했던 사람은 결국 예수를 팔아먹은 가롯 유다였다는 것을 우리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 교회는 세상에 이렇게 비추어져 버렸다. 요즘 여러모로 유명한 어느 대형 교회에 내규에 보면 장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나. 물론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면 좋겠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적 지위는 없어도 말이다.
하나님께서 귀한 능력을 주셔서, 좋은 사역을 하고, 귀한 책을 쓰고 이렇게 쓰임받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귀한 일인데, 여기다가 배설물을 척 붙여 놓아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이니 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저자분께서 지금까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셨다는 것이다. 이제는 중요치 않은 것을 중요한 것 앞에 크게 붙여 놓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나의 작은 바램이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저자 장로님께 이렇게 귀한 능력을 주시고, 또 장로님께서 그렇게 순종하심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성령의 사역을 그가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조금 더 나아가서 세상과 구분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방법이 멋있어 보이고 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만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배설물도 세상 살기에 필요한 것이기에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배설물로 자랑하는 우리가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집사님의 글 훌륭했슴니다. 100% 동감입니다.
PS : 들고계신 Crab, 탐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