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스카 외국 영화상을 수상한 일본영화 "Departures"를 며칠 전 Village 8 영화관에서 보았습니다.
죽은 사람 염해주는 것을 주제로 만든 코믹하고도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묘지를 동네 한 가운데 두고, 혹은 교회당 옆에도 둘 정도로 죽음과 친근한데 비해, 죽음을 두렵고, 부정하고, 멀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동양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해줍니다.
도쿄 한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주인공은 재정난으로 오케스트라가 해체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놓은 집에서 살게된 주인공 부부는, "떠나는 사람("Departures" - 일본말로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음)을 돕는 NK Agency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갑니다. 그런데 여행사 정도 되겠다 생각하고 찾아간 곳은 장의사였습니다.
여행사인줄 알고 찾아왔다는 주인공에게 장의사 주인은 "아 광고가 잘못되었다"며 "떠나는 사람(departures)"에 줄을 직 긋고는 "떠난 사람(the departured)"이라고 써준다. 그리고 주저하는 주인공에게 다짜고짜 첫 월급을 주며 주인은 그를 고용합니다. 장의사에서 일하게 된 것을 싫어할 것이 분명한 아내에게 주인공은 그저 "행사를 돕는 일을 한다"고 얼버무립니다.
그 때부터 주인공은 장의사 주인을 따라 다니며 여러 종류의 죽음을 보면서, 죽은 자에 대한 경의와 애도의 마음으로 시신을 닦아주고, 옷을 입히는 장의사 주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일에 빠져들게 됩니다. 장의사 주인은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먹고 산다."
막 시신을 만지고 돌아 온 그들이 정신없이 튀김 닭을 뜯어 먹는 장면도 나옵니다. 튀김 닭도 일종의 죽은 송장이라면, 그와같이 산 자들은 죽은 것을 먹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일종의 요리사 같았습니다. 요리사는 죽은 것을 잘 요리해 산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들은 죽은 시신을 정성껏 닦고, 꾸며줌으로써 유가족들에게 뭔가를 남겨줍니다. 고인을 미워했던 유가족은 염하는 과정을 통해 고인을 용납하게 되고, 평생 아내를 사랑하지 않던 남편은 곱게 치장한 아내의 시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떠나는 장의사 주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며 평생 가장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은 유가족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를 정성껏 가꾸어 산 자들의 삶을 의미있고 살찌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요리사와 같았습니다.
남편이 장의사에서 일하게 된 것을 안 아내는 "그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지지 말라!"며 남편을 떠납니다. 그러나 임신을 하고 돌아온 아내는 우연한 기회에 남편이 하는 일을 보면서 마음이 열립니다. 그녀의 눈에 남편은 더 이상 더러운 송장을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가요, 성직자였습니다. 주인공 또한 그 일을 통해 마지막에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극복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장의사 주인은 실수로 "떠나는 사람(departures)"이라 광고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죽은 사람은 "떠나 버린(departured)"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무엇인가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죽음, 특별히 시신이라는 뭔가 섬뜩하고 부정한 것을 통해 살아있는 인생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마태복음 13장의 누룩의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 (마태 13:33)
마치 부정한 시체처럼, 누룩은 일종의 곰팡이로 유대인들에게는 도덕적 불결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때도 집안에서 누룩을 다 치워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천국을 그 더러운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현대식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천국은 마치 온 몸에 퍼진 암 세포와 같다"는 정도의 도발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부정한 누룩, 부정한 암 세포, 부정한 시체.... 천국?
Departures란 영화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부정함과 정결함을 넘나드는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영화였습니다.
天治 한명성
